PART 2. 사람과 함께, 혼자서도.
4장 — 태움 경험
태움은 티비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.
처음엔 몰랐다. 그냥 선배가 엄한 거라고 생각했다. 원래 병원이 이런 곳인가 보다, 했다.
특정 선배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속이 살짝 조여들었다. 틀리면 혼나는 게 아니라, 존재 자체를 지적당하는 느낌. "이것도 몰라요?"가 아니라 "당신은 왜 이래요"에 가까운 말들.
말투는 조용했는데, 더 무서웠다.
foley-cath 숙제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.
선배한테 foley-cath 관련 공부를 해오라고 숙제를 내줬다. 이사한지 얼마 안되서 책도 없어서 도서관 가서 관련 교과서 펼치고, 그림 그리면서 외웠다. 삽입 순서, 확인 방법, 주의사항. 다음 날 물어볼 것 같아서 준비했다.
그림이 리얼리티 했는지,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넘어갔다.
허탈했냐고 하면, 아니었다. 오히려 그게 남았다. 혼날까봐 외운 건데, 결국 내 것이 됐으니까.
태움이라는 걸 버티는 방법이 있냐고 묻는다면.
솔직히 말하면, 방법보다 운이 컸다. 좋은 선배를 한 명이라도 만나면 달라진다.
나한테도 그런 선배가 한 명 있었다. 바쁜데도 물품 어디있는지 찾으면 "여기 있어" 손 잡고 데려다주던 사람.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오래 갔다.
태움 속에서도 그런 사람이 한 명만 있으면, 버티는 이유가 생긴다.
눈치 보며 따라다니고, 혼나면서 외우고,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선배가 덜 무서워진다. 내가 강해진 게 아니라, 내가 아는 게 조금 생겼기 때문이다.
까라면 까야지, 하면서 버텼던 그 시간들.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기도 하고, 참 치열하기도 했다.
5장 — 수다와 함께 환자 일
병동은 생각보다 조용하지 않다.
바쁜 건 맞다. 근데 바쁜 와중에도 사람들은 말을 한다.
"어제 몇 호실 환자분 많이 안 좋으시더라." "아까 보호자분 왜 그러셨대." "오늘 신환 또 들어온대."
짧고 빠른 대화들이 병동 곳곳에서 오간다. 그게 단순한 수다가 아니라, 일종의 정보 공유이기도 했다.
신입 때는 그 대화에 끼지 못했다.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이었고, 맞장구를 칠 수가 없었다. 그냥 듣고만 있다가, 어느 순간부터 한마디씩 하게 됐다.
그게 병동에 섞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.
인간관계의 핵심은 간단하다.
바쁠 때 옆에 있어 주는 사람, 모를 때 짧게 알려주는 사람.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병동 생활이 달라진다.
처음엔 일이 힘든 줄 알았는데, 지나고 보니 사람이 제일 어려웠다. 그리고 사람이 제일 힘이 됐다.

6장 — 수다와 함께 음식
야간근무 음식은 진심이다.
새벽 두 시. 라운딩 끝내고 일 마무리 다 할때쯤.
야식먹는 타임이 온다. 다 같이 대화 하면서 밥 먹는 그 시간을 가끔은 그리울지도.
먹는 게 버팀이 되는 순간이 분명히 있다.
몸은 피곤하고, 아직 끝나려면 멀었고, 콜은 언제 울릴지 모르고. 그 상황에서 밥 한끼니가, 입이 주는 효과가 생각보다 크다.
바쁠때, 졸릴 때 입에 뭔가 있으면 조금은 버텨졌다.
커피는 필수였다. 믹스커피 한 잔이 새벽을 버티게 해줬다. 나중엔 커피 없이 야간을 어떻게 버텼나 싶을 정도로 습관이 됐다.
(지금도 커피 없이는 출근이 좀 어렵다.)
커피 한 잔.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게 새벽 병동의 작은 위안이었다. 병원 생활해 본 사람이라면 아마 다 공감할 것 같다.
(요즘은 야식비를 받는 추세다. 밤에 먹으면 살찌기도 하고 안먹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인지도.)
7장 — 노래와 함께 일하기
새벽 병동은 이상하게 감성적이다.
형광등은 밝은데, 복도는 조용하고. 아침을 깨우는 내 음악소리에 아마 환자분들도 시끄러웠을 지도 모른다.
병원마다 달랐다. 음악을 틀 수 있는 병동이 있었고, 완전히 조용해야 하는 병동도 있었다.
야간에 조용히 일할 수 있는 곳이면, 음악이 버팀목이 됐다.
가사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, 그냥 소리가 있다는 게 좋았다. 완전한 침묵보다는 나았다.
무슨 노래였는지는 기억 안 난다. 그냥 그때 음악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난다.
자극이 필요한 게 아니라, 그냥 같이 있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.
지금도 그 시절에 자주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, 가끔 조용했던 그 새벽 복도가 떠오른다. 형광등 빛이랑 조용히 일어나기 시작한 환자들이랑.
그리고 그래도 하루가 지났다는 것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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